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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세계관, 미키 17로 확장되다

by 반딧불이08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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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개봉을 앞둔 영화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첫 번째 정통 SF 장르 작품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이후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세계관을 우주라는 광대한 공간으로 확장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 글에서는 <미키 17>이 어떤 철학적 기반 위에 세워졌는지, 봉준호 감독 특유의 시선이 이번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그리고 기존 영화들과의 연결성은 무엇인지 상세히 분석해본다.

세계관의 뿌리: 사회 구조에 대한 탐구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단순한 오락물이나 상업영화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일관된 주제의식과 사회 구조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한다.

<플란다스의 개>부터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들은 ‘보이는 것’ 이면에 숨겨진 시스템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순된 삶을 포착하는 데 집중되어 왔다.

<미키 17>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원작은 에드워드 애쉬튼의 소설 『Mickey7』이며, 내용은 죽을 때마다 복제되어 다시 살아나는 '소모품 인간' 미키의 이야기다. 이 설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체 가능한 노동자, 혹은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인간 존재를 은유한다. 인간이 기술과 체계를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통제받는 구조는 이미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반복되어 온 핵심 주제다.

그의 대표작 <설국열차>에서 인간은 열차라는 인공적 공간에 갇혀 계급과 통제를 경험하고, <기생충>에서는 반지하라는 공간 속에서 계급 간의 시선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키 17>은 이보다 더 확장된 공간, 즉 우주라는 무대를 통해 같은 이야기를 다시 묻는다. 과연 인간은 기술 문명 속에서 더 자유로워졌는가, 아니면 더 깊은 통제 안에 갇힌 것인가?

‘미키’라는 존재는 개인이면서도 사회가 만들어낸 ‘기능적 인간’이다. 죽음을 반복하면서도 기억을 이어가는 그 존재는 인간의 자아가 사회에 의해 얼마나 침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봉준호는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윤리성과, 삶의 가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세계관 속에서 죽음조차 ‘관리되는’ 시스템은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의 기준을 시험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미키 17 속의 철학과 상징

<미키 17>의 중심에는 '복제'라는 소재가 있다. 하지만 봉준호는 단순히 과학기술의 발전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복제된 인간이라는 설정을 통해, 존재의 본질과 개인의 정체성, 그리고 반복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미키는 죽을 때마다 새로운 육체로 복제되지만, 그 삶은 여전히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체계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취급받는 현실을 반영한다. 직장 내에서, 사회 내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의 기계 부품’처럼 여겨지는 경험을 한다. 봉준호는 이러한 현실을 우주 배경 속 SF라는 장르적 장치를 활용해 더욱 극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더욱 제약하는 환경으로 나타난다. 자유와 무한의 상징인 우주가 사실은 더 정밀한 시스템과 더 강력한 통제를 의미하는 배경이라는 점은 중요한 철학적 전환이다. 인간은 더 많은 기술을 가졌지만, 그 기술이 결국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봉준호의 일관된 비판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미키라는 인물 자체도 상징적인 존재다.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반복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의 역사와도 닮아 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지만, 그 기억을 무시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러한 구조는 영화의 플롯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되며, 관객에게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과 삶의 방향성에 대해 되묻게 만든다.

기존 작품과의 연결성: 봉준호 영화 유니버스

<미키 17>은 단절된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기존 봉준호 감독 영화 세계관의 연장이다. <설국열차>가 계급 구조를 수직적 공간인 열차로 비유했다면, <기생충>은 같은 개념을 현실적 공간 안에서 묘사했고, <옥자>는 다국적 자본과 생명 윤리에 대한 비판을 다뤘다. 이처럼 봉준호는 항상 '구조'에 주목해 왔다. <미키 17>은 그 구조가 우주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장이지만, 그의 영화적 철학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미키 17>이 글로벌 캐스팅과 영미권 제작 환경 속에서 만들어졌음에도, 여전히 '봉준호적 감성'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세계화된 시스템 속에서도 자신의 시선을 잃지 않는다. 로버트 패틴슨, 스티븐 연, 마크 러팔로 등의 배우들과 협업하면서도 그는 감독 본연의 색깔을 유지하고, 한국적인 문제의식과 전 세계적 공감을 동시에 이끌어내고 있다.

또한, <미키 17>의 영화적 구조는 장르 혼합이라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연출 기법이 극대화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SF라는 장르적 외피 안에 스릴러, 드라마, 철학적 사유, 심지어 블랙 코미디적 요소까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이러한 방식은 <기생충>에서도 탁월하게 구현된 바 있다.

 

특히, 봉준호 영화의 상징성과 메타포는 이번 작품에서도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배경과 캐릭터, 카메라 워크, 대사 하나하나에 의미가 녹아 있어, 단순한 관람이 아닌 해석과 사유를 유도하는 점이 바로 ‘봉준호 유니버스’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기존 작품들이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나 보편적인 인간 본성을 다루는 데 집중했다면, 이 작품은 그러한 주제들을 전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스케일로 확장한다. 그러나 그 핵심은 여전히 ‘인간’이다.

봉준호 감독은 기술이 발전해도, 사회가 변화해도, 인간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미키 17>은 그 연장선에서, 복제라는 미래 기술과 우주라는 배경을 통해 인간 사회의 반복성과 통제, 존재의 윤리를 이야기한다.

이번 작품은 단순한 SF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봉준호 감독이 계속해서 던져온 질문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는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며, <미키 17>은 그 성찰의 지평을 더 넓은 우주로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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